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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두께

강씨댁 여인 4대와 주변 이야기 1

 

시간은 흐르는 물인가 보다

세월은 시간 속에 묻혀 교교히 흐르며,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그렇게 사는대로 살다가 지는 해 처럼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이 모든것을

우리들은  세대가 바뀌고, 대를 이어 간다고 말할란지 모른다

 

나도 어느 집의 딸이었다가,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했고

누군가의 딸이었던 그 시간 보다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이 시간이 더욱 길듯

누군가의 아내이며 ,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그것이 되풀이 되어

흐르는 시간 속에 하나의 굵은 직선으로 이어져  간다

아마 영겁의 세월 이전부터, 나는, 우리는 그렇게 계획 되어졌으며

그렇고 그런  배우자를 만나, 그런그런 한 세상을 보내며 살게 되는것도  

 

 

우리는 어디서 만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또 그 다음 자리를 이어 나가는 것일까

처음엔 우리는 그저 누군가의 딸일뿐 이었는데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나서부터,  그 인연의 고리가 굳게 이어지고 흘러 가는 것일지니라

지금 나는 내게 있어 ,  소중한 네명의 여인들을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어찌 한 사람의 삶의 희락을 다  알겠으며, 어찌 질고의 세월을 다 이해 할수 있겠느냐마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가끔은 그리움으로 오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처럼

잊히기 전에, 생각나는 대로 가끔 울 서방에게 묻기도 하면서 이렇게 기록해 두고 싶다 



우선 먼저 밝혀 둔다

이 네명의 여인들은 남편의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내인 나와

아들아이랑 혼인을 한  나의 며느리의 이야기 이다

 

나는 이 여인  나를 포함한 네명 모두를 보았고 , 볼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에 속한다

내가 결혼 했을땐 87세의 고령의 시 할머니가 그때 까지도 정신은 총총하셨고
할머니가 안 계셨던 나는,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신 것이 참 좋았었다

 

며느리에겐 엄한 시어머니로 군림을 하셨던 할머니도  손부는 마냥 귀여웠고

손부도 아가야 불리며 가끔씩 봐도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을 눈길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또 기다림 없이 증손주도 척 안겨 주었는데다, 젖몸살로 손주를 젖이 모자랐던 며늘보다

호리호리 해도  아기 젖이 넉넉했던 손부는 보기만 해도 웃어 주시곤 하셨다

손부는 할머니가 자주  해 주시는 당신의 젊은 날 옛이야기가 재미 있기만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남편이 태어나기도 전의 그 시절 시댁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할머니의 할머니 시절의 이야기니 무슨 소리여 할지도 모른다

그 때 경상도, 선산군 장천면의 강 초관댁은 사방에 내 땅이  많은 부자 였었는데

어떤 일을 계기로 집안은  풍비 박산이 나고, 족보마저 팔아버렸다고 한다 

 손부에게는 시 할머니 였던 박씨 부인이 혼인 했을땐  

정말 송곳 꽂을 땅도 없는 가난한  농민의 세째 아들이었다



Pys   ~~

밀양 박씨 여인


맏 손주라고 남편을 아주 사랑해 주셨던 남편의 할머니를 소개 하자면  
그녀는 당시 여자로 키 가 큰 편이고 치마 두른 여장부란  소리를 듣고  살았었다
얼굴도 잘 생긴 남자를  보는듯 했고, 가사일도 척척 잘 하고 성격은 아주 엄격 했다
그러니 열살 가까이 나이 많은 신랑  보다 내주장이 강했고
그 당시 여자의 몸으로 만주까지  보따리 장사를  다니기도  했다

 

여리고 온화하신 할아버지는 보통의 키에

홉살 어린 나이에 꼴 머슴으로 일을 시작 하셨으니   

모두가 힘든  그 시절이었다고 해도, 참 고생 많이 하셨다

포항서 소금을 사서 지게를 지고 구미까지 이틀길에 걸어 오시며

지게에  냄비를 달고 다니며 오는 도중  밥을 해 먹고, 노숙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사시면서 살림을 조금씩 일으키셔서 나중에는 중농이상의 부를 이뤘다고 한다

남편이 초등학교 6학년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할아버지도 장수를 하신편이시다



 박씨 부인은

딸이 넷, 서열상 세번째가 아들, 맨 늦둥이 막내가 지나번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이다

그중 우리 아버님을 포함 서너분이 인물들이  출중했는데, 그만큼 한성격 하기도 ~`
큰 아들이 엄격한 성격과 여러 재능이 많으셨던  바로 우리 아버님이었다

소학교때 선생님이셨던 일본인 교사가 사랑해 주셔서

일제 징용을 받았을때 선생님이 계신 일본으로 건너가셔서 몇해 계시다가 오셨다
정말로  잘 생긴 영화배우 멜깁슨을 닮으셨는데, 무서운 표정과 엄격한 성격으로

주변사람들이 어려워 했고 ,갓 결혼한 새댁인 나도 아버님이 굉장히 어려웠었다

 

젊은날 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역시 공무원이었던,거의 스므살 가까이 나이 차이 나던 작은 아버님의 말씀에 

컴퓨터가 없던,타자가 없던 시절에 우리 아버님이 정리 해놓은 면사무소의

서류의 일목정련 함과 뛰어난 필체는,  세월이 아무리 가도 최고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면에서도 제일 달음박질을 잘 하는 직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님은 수신 제가를 잘 하지 못하셨다

좋은 인물은 따르는 많은 여자들에게, 성격하고는 상관 없는지  수시로 마음을 주었다

울 서방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아내인 소씨 부인이 출산을 하고<섣달 스무 나흗날> 

설 명절을 시가에서 보낸후, 인근 도시 따로 분가한 그곳 집에 가니

이미 다른 여자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라는

지금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을 잘못도 서슴지 않았다

또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것이 잘못한 일이란것을 한번도 사과하지 않으셨단다

당시에는 살만하다던가, 하면 그것이 다 수용이 되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남긴 아내와 자식들에게 평생에 아픔과, 원망
씻기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기고 가셨다




Shs~~~소씨 부인

때론 무덤덤 해 보일 만큼 감정의 표시가 적은, 그녀는 아담한 키에 외모도 단정했다,

드세고, 일 잘하는 여장부 시어머니 눈에는, 그 시절에는 며느리는  식모 수준인데

한눈에도 차지 않았다고 한다 ,

시할머니 이웃한 댁에 새로 시집온  며느리가 워낙 똑 부러져서 

 동생이라는 말에 ,매파를 넣었다고 한다  ~~두 가정다 예수 믿는 가정이었기에~

울 시이모님과 울 어머님은 정말 많이 다르시다 ~~~외모는 울 엄니가 더 이쁘다

정말 소씨 부인과,아버님은 인물이 좋다

열아홉에 시집온 소씨부인은 결혼을 하면서 초야에 신랑을 처음 보았는데

당시에는 피차 외모에는 만족 했었는데 ~~왜 그렇게 평생 함께 하지 않았는지

소씨 부인의 남편, 그러니 울 아버님은 아내 이외의 여자를 두지않으면

단명 할꺼란  그러니 팔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손부는 박씨 할머니께 들었었다

<아기가 어릴적에 지나가는 어느 탁발승이 그랬다나, ~`이런 이야기 좀 분하다>

 

소씨부인은

 

화목하고, 믿음 좋은 장로님 가정이며, 넉넉한 부농의  막내딸이었다

올케도 있었으니 결혼하기까지 가사일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 주일 학교 교사하고, 수를 놓으며, 제기차고 발랄하게 놀았다니 

삶이 감정을 억제하며 참는 사람으로 바꿔 놓았는지도 모른다  

일본 유학을 하고 와 교편을 잡던 오라버니도, 남동생도 모두 목사님이셨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와, 긴 세월 남편의 부재에도 참고 살수 있었던 것은

신앙도 있었지만 , 출가하고 난 후 뉘집 딸 못 살고 돌아 왔다라는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길 위해 ,초롱초롱한 자식들을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어

한 많은 세상을 참고 사셨었다


그 시절 많은 여자들의 억울하고, 속상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얼마나 많았을까

여권은 땅 바닥에 뒹굴고, 며느리로서, 그것도 맏 며느리로서 일 또한 얼마일까


소씨 부인은 딸 넷과 아들 둘을 두었는데

위로 딸 둘은 참말로 어이없게 ,홍역으로 둘을  한꺼번에 놓치고 말았다 ~~~

가을 추수 끝내고, 막내 시누 결혼 시키느라 , 아픈 아이들을 돌아볼 사이 없이

 

 

혼인 잔치로 몇몇일을 정신 없이 음식 해야 하고, 준비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홍역으로 병원을 간다거나 , 예방 접종이 없는 시대라고 해도

그때는 그랬다고는 해도 듣기만 해도 너무 슬프다 ~~`이런 이야기 전부 박씨  할머니가 해주신것임

장화라고 불렀던 작은 아이는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고 하시면서 ~`

 

 

또 딸 하나는 남편과 두살 터울 누나인데 초등 2학년때 어린 나이에 또 놓치고  말았다


이웃의  미친개가 할퀸 상처가 공수병이 되어  치료하다  죽고말았으니

소씨 부인의 그 한서린 마음이 심장에 얼마나 멍이 되고,채이고 했을까

정말이지 소씨 부인의 심장에 푸른 멍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그 멍들로 더욱더 주님께 매달리는 기도하는 어머니, 할머니가 되게 하셨다

이 아이들 ~~나중 돌아가실 때 천국에 가면 맨 먼저 보고 싶은 내 아이들이라고

한평생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던  한 서린 말씀을 그때에는 하셨었다

그러니 남편에게 누나가 세명이나 있었는데 ``두명은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초등 일학년 때의 , 먼곳으로 떠난 누나는 기억속에 자리 잡진 않았을까~`차마 물어보기도 그렇다

 
소씨 부인은 딱 3남매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서른 가까이나 되어서야 낳은 울 남편," 장남인데 어머니 연세가 높네요" 라고 들었다 

시동생 ,남편이랑 십년 차이 나는 막내 늦둥이로 시누를 두었었다

 

 울 서방은 엄마의 상처를 보면서 자랐기에 ,어머니를 늘 애틋하게 생각했으며, 

고부간의 억울함을 보고 살았기에 속깊고 든든한 신랑의 자리에서 중심을 지켰다

또 늦둥이 딸 시누가 참 친정 엄마에게 잘 할려고 애썼고 ~~

음식솜씨, 손솜씨를 할머니를 이어 받았다

한 성질 하는 것도


소씨 부인은 결혼 기간 중에 오랜 시간 남편이 밖에 나가 살았을때도 시부모를 모셨었다

늙으면 조강 지처를 찾아 온다는 이야기 처럼<남편이 군 제대 후에> 

소씨부인 쉰 중반이 넘어서야 시아버님은  당당히 다시  오셨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89세까지 사시니 당신의 나이도, 환갑이 거의 다 되고 말았다

아버님도  시 할머니가 돌아 가시고 2년 후 돌아 가셨다 ~돌아 오신지 칠 팔년후 



2007년  양력 1월 12일  금요일 오후에
소씨부인이 소천하였고, 오늘로써 만 십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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