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성탄 절이다
이맘때면 거리마다 , 텔레비젼 마다 울려 퍼지는 케롤 송과 ,
백화점에도, 거리에도 휘황하고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로 온나라가 술렁대며
우리는 우리대로 성탄절 교회 행사로 하루 앞서 교회 저녁 예배로 가며
낮엔 하루 앞서 성탄절 점심을 위해 교회 주방봉사 준비조로 깔깔 거리며 일할 텐데 ~
올해는 기울어진 경기 탓인지 ,거리에도 방송에도 케롤 송은 들려 오지도 않고
휘황한 성탄 츄리가 멋드러진 곳은 우리 교회에서 본것이 전부다
교회 주방 봉사조로 사람들이 많아 1,2조로 나뉘어 이번 참엔 빠지고
이틀에 걸쳐 성대하게 준비하는 교회 주일학교 성탄 발표회도 어제 수요 예배와
내일 성탄 감사 예배에 나눠져 영광 올리니 ~~~`
아 ~~정말 이렇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조용히 집에서 우리 부부가 성탄 전야를
보내게 되는 것이 참말로 신기 하다
그러고 보니 두주일 동안 목장 예배를 드리지 않아 성탄 츄리조차 만들지 않은 것 봐라
만들다기 보다 오래전 꽃꽂이 수강때 만들어 둔 미니 츄리 두개를 해마다 재조립하고
십년은 된것 같은 반짝이 츄리 꼬마 전구도 해마다 이맘때 깜박 거렸는데 ~~
지난 주일 앞서 다녀간 아들 내외에게 카톡 성탄 카드를 미리 보냈었고
아침에 일찌감치 성탄 인사를 전화로 알려온 딸아이에게도 즐거운 시간 가지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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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예수를 믿던 믿지 않던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었다
우리네 젊은 날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 키울적에도
성탄은 설, 추석이랑은 또 다른 명절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12월 접어 들기 바쁘게 성탄 카드를 몇장을 보내고 또 몇장을 받았냐는것이 이야깃 거리였고
그날은 서로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며 , 결혼 하고 나서는 아이들 에게
사 줄 것을 성탄 때 까지 기다리자고 달래기도 하던 그 때 였었다
양말에 잠자리에 두면 산타가 와 선물을 넣어 준다며
우리가 잠시 집을 비운 그 사이에 착한 아이에게만 산타 클로스가 다녀갔다고 그랬던 일
좀 더 아이들이 자라 산타 클로스는 엄마, 아빠임을 알아 채리고 난 후 부터는
성탄 전날 갖고 싶어하던 선물을 사러 아이들이랑 백화점 , 완구 코너에 가던 일도
팔단 변신 로봇이라든가,여러 로봇들 .자동차등 남자 아이의 장난 감들과
인형 놀이 세트, 인형의 집 , 미미 인형 놀이 등을 사다주며 즐거워 하던 일들이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처럼 ~~~오래된 전설 처럼 떠오른다 ~~
그러다 , 그러다 ~~~지나간 나의 성탄 전야제는 어떻했을까 가만 가만 떠 올려 보며
혼자 웃기도 한다 ~~그러게 벌써 나는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세대가 되고 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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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0년대도~`다 끝날 십단위 숫자가 바뀔 그때~~~
우리들의 진로가 엇 갈리는 그때 그 시기가 아닐까
선택 받은 세계로 돌입하는 대학 가는 친구들도, 그냥 집에서 쉬거나
또 나처럼 일찌감치 직장에 다니며 세상을 알아가야 하는 부류도
그땐 세상 고민을 다 안고 사는 듯 ~~불평과, 또 탁한 세상에서 혼자 고고한척
폼을 잡던 그 때 그 시절이다
전국적으로 성탄이라고 들썩이는데 별 다른 스케쥴도 없고 혼자 집에 있는데
친구들이 다섯명이 미팅을 할려는데 한사람이 모자란다고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그때도 소설 처럼 항상 이루지 못할 사랑을 꿈꾸는 중이었다고 할까
아는 오빠들하고 대구로 놀러가서 성탄절을 보내자고 ~~너무 재미 있을 것이라고
성탄절 그땐 열두시 통행금지를 그날만큼은 해제가 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울 친구 다섯명이랑 웃고 떠들며 대구가는 기차를 탔다
다섯명의 구성원을 보면 나랑 제일 친한 숙이, 친하다 조금 서먹했던 제일 이쁜 순이
숙이랑 친한 다른 순이,다른 순이랑 친한 옥이였는지
어떻게 갈려던 누가 빠지고 대신 나를 넣게 되었는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때 주선자는 숙이랑 친한 다른 순이 였는데 그 애는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교통 사고로 떠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어린 열 아홉, 스물되는 아기들이 그땐 우린 어른이 다 됀줄 알았는 갑다
그때 만난 오빠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마 군대에도 갔다와 직장에 다니는
우리 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이었다~~그때 내가 좋아하던 분을 기준으로 봐 시시해 보이기도 했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가보게 된 디스코 텍인지,
그땐 고고 춤이 유행이라고 했던가 ,디스코이었는가
혹 입장이 안 될지 모른다고 땋은 머리를 다 풀고 가야 한다고 하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밀어 닥친 수 많은 젊고 광란하는 군중들 탓인지 돈만 내니 바로 입장
거기서 맥주와 콜라를 시키고 마시는데 음악이 나오니 오빠들이 우르르 무대로 나가더라
그때 우리 중 누가 맨 먼저 춤을 추러 나갔던지 ~~`숙이등쌀에 우리도 나중 춤춘다고 나가긴 했지만
나는 그때 왜 여길 왔던고 후회 했으니 재미도 없었나 보다
디스코 택을 나와 어떤 식당에 갔고, 밤이 늦어지니 겁도 나서 제일 이쁜 순이를
화장실에서 만나 살살 꼬드겨 기차를 타고 우린 먼저 돌아오고 말았었다 ~~
다른 셋은 이차 , 삼차, 다음날 영화도 보고 왔다는데 ~~~나는 그때 이후 그 애들을 만나기 싫어 졌다
울 서방 만났을때 이 이야기를 해 주니 ~~~아무것도 모르고 성탄절파티 줄줄 따라 가느냐고
세상을 모르는 바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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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해가 지나고 ~~~나는 잠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 했는데
내가 갔던 교회에는 청년회가 아주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주변에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반듯해 보이고,또 나도 가면 좋을 듯 했기에 등록을 했다
등록을 하니 청년회에 가입을 하라고 했고 믿음이 뭔지,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체
그저 젊은 세대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아 교회에 나갔던 시간이
채 일년이 되지 않는다~~~~어쩌면 멋진 남자 친구를 기대하며 나갔는지도 모른다 ㅎ
청년회에서 하는 성경 공부를 몇번 나가기도 했고,
필체가 깨끗해 주일학교 서기반에서 봉사 하라기에 하긴 했는데
객지에서 직장 다니니 주말에는 한번씩 집에 가야 하니 결석이 잦을 수 밖에 없다
청년회에서 성탄 전날 교회에서 청년회는 따로 모여 문학의 밤도 갖고
밝아오는 성탄 새벽에 새벽송을 청년회 주최로 돈다고 했다
천원 상당의 선물을 사서 무작위로 교환하며 어떤 기발한 물건인것을
가지고 나와 자랑하며, 서로를 축복했던 그 성탄 전야제가 내가 교회에서 가졌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 날이다
나는 양품점에서 하얀 스카프를 준비해서 갔는데, 그것은 어떤 청년에게 갔고
나는 또 그때 뭘 받았을까 지금은 기억도 가물하다 ~~
그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단위로 태워 줘서 청년들, 그리고 젊은 집사님들이
이집 , 저집 새벽이 아직도 밝아오기 한참 전에 현관 밖에서 성탄송을 부르다 보면
문이 열리고 반기며 ,메리 크리스 마스 라고 축복하며 외치던 그 때
미리 준비 해 두었다가 봉지채로 건네 주던 과자들, 과일들을 모아 교회로 가져 갔는데
나는 새벽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전날 밤 자지 못한 잠을 하루 왼종일 잤었다
그래서 성탄 예배는 참석하지도 못했었는데
아 그때 그날 엄청 추웠던것 같다 ~~아주 많이 떨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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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 믿는 가정의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되어 있는 축복 속의 나
성탄절은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나를 위해 오신 복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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