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작은 아버님의 마지막 몇일

천사하야니 2016. 11. 8. 11:28

시 작은 아버님이 79세의 일기로 천국으로 향해 떠났다

 

예정된 복막염이 생겨, 119를 타고 중환자실에 오실때만 해도 정신은 초롱하셨고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하루나 이틀안으로 사망하신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또 당장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 도중 의사 왈~~이미 치명적으로

암이 퍼져 있고 천공도 커 수술을 한들 사흘이 고비 ``그 이후는 모른다고 한다

혹 수술이 더 잘 되어 생각보다 더 사시게 될지 인간의 생사여부는 우리는 모르기에 

 또 자식들은 그래도 하는 마음에 얼른 수술을 동의하게 되었다

 

수술후 중환자실, 무균실로 옮기셨고 ,

말씀은 여러 기계 장비로 둘러쌓여 말씀은 못하셔도 정신은 맑은 듯 하셨다 ~~

면회 시간에 묻는 말에 눈과 고개를 돌아가시는 날 아침까지 끄덕였으니 ~

그러다 수술후 사흘이 되시는 날 ``작은 아버님은 천국으로 가시니

우리 아버님이 가신지 30년만에, 어머님이 가신지 9년 `아니 거의 10년만에

동갑으로 연애로 만나 평생을 잉꼬로 사셨던 숙모님을 두고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셔버렸다

 

 

**

작은 아버님은

몇년째 췌징암을 판정 받았고, 교사와 의사인 두 아들의 적극적인 효도로

잘 치료를 받아 완치 소식도 있었는데 올 봄에 또 다른 많은 곳에 전이가 되어

팔순이 될 내년 생신까지 힘들꺼란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도, 명절이나, 어쩌다 한번씩 보는 작은 아버지는 기운이 없으신듯 해도 여전히

말씀도 잘하시고  명랑 하셨기에 ``우리는 설마 설마 했드랬다

 

작은 아버님은 평생을 별 부족함  모르는 평탄한 삶 , 축복의 삶을 누리셨다

늦동이 막내로 태어나 부모에 대한 의무보다 사랑만을 받으셨고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재직 하셨으며, 고등학교 교사, 분당 차 병원의 전문의 의사로 키운

자랑스런 아들과, 이쁜,똑 소리나는 큰 며느리, 방송 작가인 작은 며느리를 좋아했었다

조카 며느리는 나는 그것이 너무 부러웠고 ~ 

올봄 수의사가 된 맏 손주를 비롯 우수하고, 뛰어난 손녀도 하나 ,모두손주를 넷이나 두었으며

많은 물질의 축복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말년에는 본인이 좋아 하는 분야로

다니시는 교회 백년사, 가문의 족보 정리, 고향을 사랑하는 모임들의 문집을 만드시며

인근 고향에서는 나름대로 식자 층의 , 유지라면 유지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모든 뛰어난 점을 다 덮어 버리는 것은,베품은 오직 내 가족에 대해서만이니다

그런 점에 여러 서운한 점들도, 또 다른 분들의 말들도 이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작은 아버님이 중학생일때 남편이 태어났으니 , 어떻게 보면 큰 형님정도의 나이차이다

형수인 울 시어머님이 새벽밥을 지어 도시락 싸 학교에 보냈다

그렇게 한집에서 조부모님과 오랫동안 살았는데, 결혼을 하고도 한참후에 분가를 해 나갔다

바로 옆 동네로 분가를 해 나갔고, 남편형제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이사나간 8년과~요것은 내 결혼 전~

작은 아버님이 아들 의대 다닐때 몇년 대도시로 나가 살던 몇해를 빼곤,

명절마다 우리집으로  온 가족 오셨었고, 또 여름철에 우리도 한번씩 들르기도 했다

 

딱 한분뿐인  작은 아버님이 같은 도시에서 사니 우리는 어딘가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나이 드시고 연로 하시니, 남편이 또 든든한 조카로 살게 되었었다

 

 

 

월요일

시월의 마지막 날 ,강행군 이었던 산행을 신랑에게 열심히 이야기 하든 중

시동생의 전화를 받고 저녁 먹다가 급히 달려감

화,수 ~남편은 매일 퇴근을 하는 중에 병원에 들렀다 오는 중

그 와중에 직장 다니는 사촌 시동생들이 잠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목요일에는 내가 병실을 지키라기에 그럽시다라고

그때 갑자기 마지막이 될 시간이 시각을 다투기 시작 했다

두시간쯤이라고 멀리 있는 동생들이 또 사촌형인 울 서방에게 전화가 오니

서방은 출근길에 먼저 떠나고, 나도 뒤 따라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마지막 그 시간은 언제가 될지 ~`기다리다 나는 집으로 왔고

그러고 몇 시간 후`~~사흘을 모든 기계 장치로 의존되던 작은 아버님의 소천 소식

정말이지 현대 의학의 사흘이 고비입니다라는 말이 딱 맞는 것이 대단하다

날짜도 정확하게 목요일에~~

장례식장을 집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이제  여러 장례 절차를 알아봅니다

벌써 여러번의 장례식을 치뤄본 저희 부부가 도움이 되니 다행이고요

 

국화와, 하얀장미에 둘러쌓인 영정 사진의 작은 아버지는

정말 인물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본인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는것을 완치 판정이 났어도  주변 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왜 갑자기 ~~며칠전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것을 보았는데

바로 지난 주에 서울까지 정기 검진으로 잘 다녀 왔는데라고

며느리까지도 잘 믿겨하지 않았답니다

금요일 아침에 가서,왼종일 장례식장에 머무며ㅡ거기서 자고

 

시댁쪽

우리집과 작은 집 ~~아버님 두 형제분~~고모님들도 돌아가신지 오래

우리집도 그렇지만 작은 집도 아들만 달랑 둘뿐이다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휴가를 내야 하는 , 다른 날짜로 또 보강을 해야 하는 아들 며늘에게

너희는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라고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중 아들이 우리는 최대한으로 우리의 도리를 지키려 한다고 내려 오니

오지 말라라는 말씀 하시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에 약간 감동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랑 같이 살던 아이라서, 아들이라서 이렇게 다르구나라고

일부러 휴가내고  몇시간 붐비는 길 운전해 오니 고맙기도 합니다

 

며칠 후면 수능을 치룰  조카가 교복 차림으로 외삼촌 차에 실려

왔다가 갔습니다 ~~

 

 

결혼식은 부모님들의 손님이 많고

장례식은 자식들의 손님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둘 뿐인 자녀인데 문상객이 많아 숙모님 아주 고마워 하십니다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었나 봅니다

삼십년전 울 아버님땐 그때는 집에서 장례를 치루는데

상주들은 세수도, 머리도 못 감게 하였는데, 구년전 엄니땐 세수는 했었지요

지금은 상주들도 샤워는 물론이고 , 가벼운 화장도 다 하더군요 ~~

 

 

 

토요일 ㅡ아침일찍  발인 예배,화장장,공원묘지

 

선산이 작은 집 가까이에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형 되는 울 시아버님, 엄니가 묻힌 그 옆자리를

오래전 부터 여기는 내 자리라고 손질하고 다듬고 하더니 ,

나중에 한번도 해 본적 없는 벌초 때문에 자식들이 애 쓸것을 염려해서였는지

작은 아버님 내외분은 지난 번 추석때 당신들이 죽을땐 화장을 하라고 한것

지금 생각하니 이렇게 가실것이 예감 되었던 것일까요

 

화장을 해서 강물에 뿌리라고, 선산에 수목장을 하시라고

여러 이야기 분분 했는데 집 가까이 그 곳에 모시면 혼자 남으신 숙모가

애끓어 힘들어 하실것과, 그냥 없애 버리는것이 너무 안타카워 하는

 숙모님  의견에 따라 장례도중 부랴부랴 공원묘지를 알아보고

그쪽으로 정해 버렸답니다 ~

저는 처음에 선산으로 함께 모시지 않는것이 약간 서운 했답니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 오후 두시에 사모제인지, 삼오제 인지요

화장을 해 작은 항아리에 담아 장례치룬 그곳

인간의 육체가 몇뼘 돌 아래 묻히고, 작은 묘비명만 남았습니다

 

앞으로 혼자 사실 숙모님과,

자식들에게 한결같이 좋은 아버지로 기억하며 살게 될 두 아들

그리고 작은 댁 맏며느리랑, 우리부부의 방문이 있었고

이제 다 끝났답니다 ~~~~~

 

이제 앞으로 살아야 할 우리들의 삶~~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맡긴 일들과, 베풀며 살아야 할 것이

우리들의 할일 같습니다

주님 감사 합니다 ~~`모든 과정에 참석할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